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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학 공부/의미치료

[의미치료] 1. 빅터 프랭클의 생애

by 쭈농 2022.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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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프랭클(Viktor E. Frankl)

1905년 오스트리아 빈 출생

2남 1녀 중 둘째

전통적 유대교의 종교적 분위기 속에서 성장 

오스트리아 빈 - 현대 정신의학 - 프로이트와 아들러

제1 학파 :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제2 학파 : 아들러의 개인심리학

 

+ 제 3학파 : 프랭클의 의미치료

 

16세에 프로이트와 학술적 토론을 하기도 했다

당시 프로이트는 인간 행동을 심리성적 원리로 설명했다

1925년 -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에 회의를 갖게 됨. 아들러 학파 역시 인간 행동을 너무 단순화한다고 생각했다

1927의대생 시절 독자적으로 임상경험을 진행하며 심리치료기법, 이론을 형성했다

1930의학박사 취득, 빈 정신병원 근무, 자신만의 독자적 이론 구성했다

193732, 정신신경과 병원 개원, 나치 정권의 오스트리아 합병되었다

1942나치 정권에 의한 강제 수용, 인간의 가장 비참하고 차참한 폭행이 이루어지는 강제 수용소에서 부모와 형, 아내, 장모 모두 죽음을 맞이함. 여동생만 뉴질랜드로 망명해서 생존했다

1945년 - 튀르크하임 수용소에서 해방을 맞이했다

 

의대생 시절 우울증과 자살 분야에 관심을 가졌다

청소년 상담센터에 관여하며 청소년들의 자살을 예방하고자 노력했다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등의 실존주의 철학을 다룬 서적을 바탕으로 실존주의적 이해를 구체화했다

 

1930년 의학 학위 취득 후 빈 정신병원에서  자살시도 여성들을 위한 감호시설에서 책임자로 일하게 되었다

 

이후 나치 정권에 의해 오스트리아가 합병되며 의사 자격증을 박탈당하고 병원도 빼앗겼다

이후 망명하지 않고 빈에 머무르며 로스차일드 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았다

그 병원의 간호사였던 Tilly Grosser와 1941년 결혼하지만,

9개월 후인 1942년에 체코슬로바키아 프라하 인근 유대인 임시수용소인테레지엔슈타트 수용소로 이송되었다

 

수용소 생활 속에서의 굶주림, 모욕, 고통 등 직접적인 인간 실존에 대한 체험했다

2차 세계대전 후 수용소에서 몰래 적은 기록을 독일어로 출판한 책이 '죽음의 수용소에서'이다

 

첫 아내의 사망을 공식적으로 확인한 이후 자신을 구해주었으며,

같은 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한 Eleonore schwind와 재혼했다

 

인간다움, 삶의 의미에 대한 심리학적 접근을 했다

아주 활발한 학술 활동을 하다가 1997년 사망했다

 

프랭클의 의미치료는 의미부여의 주체가 환경의 산물이 아닌 개개의 인간으로 보았다

생물학적이고 기계론적인 인간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신체적 심리적 차원을 뛰어넘어 인간의 정신적 차원에 대한 실존적 문제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방향을 전환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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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빅터 프랭클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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